2012년이 거의 저물어가던 12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5명의 베트남 선천성 심장병 환아들과 5명의 보호자가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10명의 베트남 환자그룹도 인솔해 오신 문영기회장님도 매우 피곤해 보였고

환자그룹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처음 밟은 이국 땅의 낯선 풍경을 눈에 담느라 마음까지 몹시 바쁜것 같았습니다

 

Nguyen Ngoc Anh (2008-01-06,F, Hai Phong) Nguyen Quoc Tuan

Nguyen Phuong Linh (2011-08-03, F, Ha Nam) Do Thi Minh

Pham Hai Linh (1996-11-16, M, Hung Yen) Do Thi Mai

Do Hai Bien (2011-7-14,M, Hung Yen) Le Thi Thanh Tam

Nguyen Thi Quynh Mai (2011-1-19, F, Hung Yen) Pham Thi Hien

 

이번에 입국한 환아는 2살 아기가 3, 5살 아이와 총각 티가 역력한 17살 소년이 각 1명입니다.

 

<뀐마이와 엄마>

 

 

뀐마이는 심실에 구멍이 있어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번 그룹중 제일 먼저 수술을 받았고 회복도 매우 빨랐습니다 건강해 지고 난 후 정상아동과 똑같아진 뀐마이는 재롱도 잘 부리고 웃기도 잘했습니다. 아기가 건강해지자 병실에서 시간이 많아진 뀐마이 엄마는 작은 체구에도 어찌나 목소리도 크고 말도 많고 부지런한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발발이 엄마라고 불렀지요^^

 

부지런히 빨래도 하고 수술중이거나 기다리고 있는 다른 아기랑 엄마를 돌봐주기도 했습니다. 한국말을 배워서 병실에 들어서면 안뇽하씨오~ 하고 큰소리로 인사도 하고 자기가 알아서 캄사합니다 대답도 하고는 깔깔깔 신이 나서 웃어 제꼈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통역도 해서 공식 통역인 화이에게 눈총도 받았지만 참 성격도 좋은 엄마 였습니다.

 

63빌딩을 관광하면서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볼이 발개진 채로 달려와서는 내가 베트남 말을 못 하는 것을 다 알면서도 한창이나 베트남 말을 이러쿵 저러쿵 흥에 겨워 쏟아 놓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말이 다 귀에 들리는데 이런 것이었습니다.

 

꼬리꼬리! 사람들이 어떤 걸 타라고 해서 탔거든 윙하는것 같아서 서 있다가 뒤를 돌아보니까 아! 깜짝이야. 글쎄 내가 공중에 떠있고 밑으로 떨어질라구 그러는데, 저기 땅밑에는 자동차랑 사람이 쬐끄맣고 무지 많았구 높은 집들도 무지 많았구 몸은 자꾸 자꾸 위로 올라가고 내가 깜짝 놀라서 기절할 뻔했어. 그래서 꺅 소리도 질렀구 머리도 어질, 귀도 붕 소리가 났어 그리고 무서운데도 자꾸 왜 웃음이 나는거야? 너무 놀라서 간이 떨어질 것 같고 심장도 쿵닥쿵닥 뛰었는데 근데 무지 무지 재밌었어 까르르 까르르~

 

훨씬 더 길게 말했지만 요약하면 이랬습니다.

벳남 말도 못하는데도 다 알아 듣겠는 건 기적이지요?

 

 

어린 조카같은 뀐마이 엄마의 행복만큼이나 마음이 행복해졌습니다.

 

뀐마이가 건강해져서 베트남으로 떠나던 날, 그간 정도 많이 들고 이별이 아쉬운 재단 가족들에게 함박 웃음을 지어보이며 씩씩하게 손을 흔들고는 큰 목소리로 안뇽하씨오~ 하더니 미련도 없이 출국장으로 쑥 들어가 버려 눈물을 찔끔 매단 우리를 마지막 순간까지 까르르 웃겨주고 사라졌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뀐마이 엄마는 더더군다나 알아듣지도 못하는 전화를 걸어 또 베트남 말을 일방적으로 왕창 쏟아놓고는 반갑다, 잘있다, 보고싶다, 놀러와라 하고는 뚝 끊었습니다. 그러는 모습이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엉뚱한 어린 조카처럼 귀엽습니다.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고 밝은 웃음으로 살아가길 기도해 봅니다.

 

<하이비엥과 엄마>

 

 

하이비엥은 올리브같은 엄마와 함께 온 2 살 아기입니다. 수술후 순조로이 회복되고 있던 중 어느 날부터 40도나 되는 고열에 시달리면서 좀처럼 열이 내리질 않았습니다.

요로감염인가? 다른 병인가?

여러 가지를 의심하며 검사하던 중 심장수술전 베트남에서 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아직 작은 몸의 한가운데에 흉하게 큰 구멍의 수술 자국이 있었습니다.

 

엄마 말로는 대장에 천공이 있었는데 괴사된 조직까지 잘라내느라 대장을 전부, 그리고 직장까지 거의 다 잘라내는 큰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대장 천공이 있었다해도 너무 과한 치료였다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 후로 소화된 음식물이 장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설사도 너무 잦으니 수시로 세균감염에, 요로감염에 시달리고 고열이 동반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심장을 고친 하이비엥 엄마는 타는 마음으로 아들의 장도 고쳐 달라고 하였으나 그것까지 도와 줄 방법이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한정된 수술비, 한정된 체류일정 모두 문제니까요.

이럴땐 너무 마음이 답답합니다. 눈 앞에 보이는 아픔을 보고도 도와줄 수가 없어서요. 도움이 필요한 것들을 다 도와 줄 수 있게 선의가 아주 아주 부자였으면 좋겠습니다.

 

40도 고열이 나고 아파도 보채지도 않고 음악소리만 나면 엉덩이를 흔들고 춤추던 귀여운 하이비엥, 부디 앞으로 없는 장 때문에 너무 많이 힘들지 않기만은 바라봅니다.

 

 

<옥아잉과 아빠>

 

 

옥아잉은 2010년에 이미 한국에 들어와 기능적으로 단심실인 심장을 폰탄수술(기능을 할 수 있는 심실이 한 개밖에 없는 경우 그 심실을 체순환을 담당하는 심실의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 체정맥을 우심방 우심실을 거치지 않고 폐동맥과 직접 연결해 주는 치료법)을 하였지만 이 수술로는 활동량이 많아 지거나 할 때 감당을 하기가 어려우므로 1년후 보완 수술을 하기로 하고 베트남에 돌아갔던 아이입니다.

 

이번 수술로 심방하나와 심실하나가 완전한 기능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지금 심장은 아주 건강하고 1개씩의 심방과 심실로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폰탄수술의 경우 결혼과 임신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해서 나중에 더 컸을 때 필요한 기능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 때 심방도 심실도 각 2개씩 만들기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고 합니다.

 

2년전, 2010년에 엄마와 함께 왔던 옥아잉은 1살이 지난 어느 날 고열이 나고 아픈 끝에 뇌졸중을 앓았습니다. 그 후에 몸의 오른쪽을 잘 쓰지 못하고, 말도 못하고, 혀도 불편해 음식을 씹지도 잘 삼키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잘 서지도 걷지도 못했는데 이번에 재 수술을 받으러 올 때는 보폭이 일정하지 않고

비틀비틀 곧 쓰러질 것 같긴 해도 자기 발로 걸어서 왔습니다. 그 모습만도 너무 기특하고 건강을 다 되찾은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얼굴은 청색증이 남아 푸른 빛이 역력했습니다.

이번 수술 후에 얼굴색이 얼마나 많이 달라지고 건강한 얼굴빛이 되었는지 바라보면 참 흐뭇한 마음이었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슬픈 소식도 한 가지 있었습니다.

뇌졸중의 후유증은 오른쪽 몸 뿐아니라 왼쪽 옆 뇌에 손상을 남겼고 그 손상은 뇌전증(간질)이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여러번 30~1분사이의 경련이 아이에게 스륵스륵 지나갔습니다.

서서 잘 놀다가 경련으로 뒤로 꽈당 넘어가거나 가만히 앉아 있다가 이상하게 몸을 부르르 떨며 동작을 정지 하다가 한바탕 울면 그제야 경련이 지나간 것을 알곤 했는데 그러고 나면 또 아무 일도 없는 듯 지내니까, 걱정은 되었지만 아빠는 약도 먹이질 않았답니다. 물론 심장이 더 급한 일이었기도 하구요.

 

세종병원의 검사 결과 이것은 확실한 뇌전증으로 빨리 약을 먹어야 하고, 잘 맞는 약을 찾고, 적절한 복용량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지속적인 관리를 해야 그나마 발작이 심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한국에 있는 짧은 시간동안 이 약이 맞는지, 복용량은 적절한지 조율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약을 먹고는 하루에 예닐곱 번씩하던 경련의 횟수도 줄었고 하루하루 눈에 띄게 활동이 좋아졌습니다. 웃기도 잘하고 표정도 아주 다양해 졌습니다. 잘 쓸 수 없는 몸으로도 걷거나 움직이기를 좋아하고 밝아져서 참 기뻤습니다.

 

웬만한 엄마보다 더 살뜰하게 딸을 돌보는 아빠 덕에 옥아잉은 병실에서 머리도 제일 많이 감고 제일 깨끗하게 관리 받고 지냈습니다. 사랑 많은 엄마 아빠와 함께 계속 건강하게 자라면 좋겠습니다. 출국 전 63빌딩 수족관, 전망대, 왁스 뮤지엄에서 정말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많이 행복해 했습니다. 말을 잘 하지 못해도 보고 느끼는 것들로 아주 신이 난 것 같아서 보는 사람의 마음도 환해 졌습니다.

 

꼭 한달만에 드디어 출국하는 날, 아빠는 감사와 사랑에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보고 있던 재단 직원들도 헤어짐이 아쉬워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구요. 심장은 건강해 졌지만 아직도 남은 아픔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갈 옥아잉과 가족이 많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남은 숙제를 다 해결해 주지 못하는 아픔에 가슴이 저리기도 하지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자라줄 것을 기대합니다.

 

<하이링과 엄마>

 

 

하이링은 17, 한국나이로는 18살된 다 큰 청년입니다. 10살이 넘었기에 부모 없이 혼자 오기로 되어있는 나이임에도 엄마가 굳이 굳이 따라 왔습니다. 한 푼이라도 아껴 다른 심장병 아기들을 위해 써야 하는데 700불이나 더 쓰게 하면서 엄마가 따라오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젊은 시절 남편을 간암으로 하늘나라에 보내고 남겨진 하이링은 엄마에겐 금쪽같고 하늘같은 아들입니다.

 

엄마는 옷 만드는 공장에 다니면서 아들을 열심히 키우고 가르쳐서 이제 고등학생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심장병도 있고 지능은 점점 떨어지는 것 같고 몸이 약해 풀썩 쓰러지기도 하니 남편의 유산같은 아들을 잘 키우고 싶은 엄마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습니다. 그러던 하이링이 수술을 위해 한국에 오게 되었고 혹시나 아들에게 무슨 일은 없을까 하는, 아들 곁에서 최선을 다해 간호 하고 싶은 마음에 현지 파트너인 NFVC에 조르고 졸라 결국 아들과 함께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살뜰히 아들을 돌보아 주고 싶은 그런 엄마의 애타는 마음이 한편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이링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18살 질풍노도의 시기! 먹으라는 것도 안 먹고, 하라는 것도 안하고, 엄마가 하는 말에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 하나도 듣질 않아요. 세상 일이 뜻대로 되는게 없다니까요!

 

수술이 잘되고 건강한 심장을 가진 하이링의 엄마는 애초의 생각대로 아들 간호는 잘 할 기회가 없었지만 건강해진 아들과 함께 해가 바뀐 122일 금쪽같은 아들을 살려준 한국의 병원에 선의재단에 감사와 감동으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베트남으로 돌아갔습니다.

 

<프엉린과 엄마>

 

 

프엉린은 하노이근처 하남 지방에서 온 아기입니다.

하루 이틀 같이 지내는 것으로는 프엉린이 말하는 것을 보기가 영 힘듭니다. 대신 칭얼거리고 울기를 잘 하는데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엄마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목 말라서 물먹고 싶은데 진한 국물 주고, 배 고파서 우유 먹고 싶은데 맹물 주고, 맛있고 상큼한 과일이 먹고 싶은데 밥이랑 꽁치랑 손으로 주물러서 비린내 나는 죽도 주고... 더워 죽겠는데 자꾸 껴입혀서 땀을 뻘뻘내고...

 

웬일인지 30대 중반으로 나이도 적지않은 편인 엄마는 아이를 잘 돌볼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곁에서 보고 있으면 그렇게 하니 아기가 울지요~라는 말이 절로 나올 때가 많았습니다. 어쨌든 말이 없는 아기인데 신기한데도 음악소리 노래소리가 나오면 손도 흔들고 어깨도 흔들고 노래도 잘 따라 부릅니다. 뼛속부터 아이돌 가수 기질이 있는 건가요? 그러고보니 얼굴도 참 이쁩니다.

 

프엉린은 성공적인 수술후에도 심박동이 60~70으로 너무 느려서 인공 심박동기를 삽입했습니다. 500원짜리 동전만한 심박동기는 아이의 맥이 60이하로 떨어질 때만 작동하도록 세팅되어 있고(60이하에서 작동하도록 세팅하면 밧데리가 너무 빨리 떨어질 것 같아서) 6~7년후에 밧데리가 다 떨어지면 밧데리만 갈아주는 처치를 베트남에서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63빌딩에 관광을 가는 날도 다른 엄마와 아이들은 너무 신이나서 춤까지 출지경인데, 출발전부터 벌써 어지럽고 멀미가 난다면서 엄마는 안가겠다고 하고 아이는 자꾸 징징 울고 있어서 좋은 것을 못 보여 줄까봐 속이 상했지만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헤어지던 날,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엄마는 너무나 신이 난 것 같았습니다. 말 수가 없는 엄마가 안시키는 말도 실없이 합니다. 출국전 롯데리아에서 식사할 때는 1회용 케첩을 들더니 이게 샴푸냐고 해서 모두를 빵 터지게 웃게 만들었어요. 자기도 너무 웃은지 깔깔깔 웃고. 그렇게 신나하는 모습을 보니 마을 안에서만 머물던 엄마에게 낯선 땅 한국에서 간병하며 지낸 1달이 너무 힘들었나보다 그래서 집에 가는 것이 너무 좋은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들고 안스러웠습니다.. 몸도 약한 엄마였는데... 아무튼 함께 지내며 좀처럼 볼 수 없던 활짝 핀 미소를 얼굴에 가득 담고는 큰 목소리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신이 나서 쌩하고 가버렸어요. 아무쪼록 오래 오래 건강하고 이쁜 아이돌 가수처럼 잘 자라나길 소망합니다.

 

Posted by 블루문1213